2024. 10. 18. 10:05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1939.10.18)
화성 지역의 민중 3.1 운동을 주도하다
"지금부터, 일본경찰서를 파괴하고 일본 순사를 처단한다!"
경기도 화성의 우정, 장안면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에서 행동대장으로 운동을 주도한 선생은 주민들과 함께 일제 탄압의 저항으로 면사무소와 경찰서주재소를 파괴하고 일 순사를 처단하였다.
차희식 선생이 생활했던 화성지역은 동학과 기독교가 전파되어 민족의식이 강했던 지역입니다, 특히 동학이 천도교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지역 주민들의 독립의지와 자주의식이 매우 높았던 곳이죠. 선생은 이곳에서 3.1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그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 받은 뒤 서대문 형무소에서 온갖 고문과 악형에 시달리다 출옥하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선생의 3.1운동을 살펴보기 전에 당시 화성지역의 큰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10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우리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토지를 말 그대로 빼앗기게 되었고 갑자기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갈 곳도 없이 그저 농촌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렇게 머무르게 된 농민들을 송충이를 잡는데 동원시키고 바닷가 간척공사 작업에 강제로 동원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전통적으로 수원지역에 잘 정착되어있던 농업기반 시설을 식민 정책 기구인 권업모범장을 설치하며 곡물 종자를 강제로 바꿔버리고 생산과정을 간섭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동척농장이 설치되며 일본인 지주들이 대거 이주하여 혜택을 받고 이곳에 원래 거주하던 우리 농민들은 그들의 노예가 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열악한 소작농의 처지에 강제 불법동원, 설상가상으로 화성지역에서 일본인 지주들은 염업을 벌였고 염세를 엄청나게 부여하여 주민들의 수탈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3.1 만세시위운동. 당연히 이 지역의 주민들은 그 어느 곳보다 격렬하게 3.1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전개력은 천도교. 기독교. 유교의 서로 다른 종교가 하나가 되어 태극기를 들고 달려들게 만들었습니다.
화성지역 만세시위도중 주민이 피살되자, 화성주민들은 더욱 격해져서 그 수가 무려 2천5백 명이나 모여 횃불을 들고 시위를 벌였으며 일제의 우정면사무소, 장안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일본순사 가와바다를 처단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는 보복행위로 4월 15일 제암리 교회당에 화상 주민들을 가둬 놓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릅니다.
화성지역의 3.1 만세운동은 비폭력형태가 아닌 격렬한 무력 투쟁이었다는 점과 다양한 계층 및 종교들이 하나로 모여 행동했다는 점, 그리고 당시의 농민수탈과 강압적인 통치방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일제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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