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동완 선생(1885.12.27~1941.2.23)

2025. 2. 23. 22:51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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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동완 선생(1885.12.27~1941.2.23)

"의로운 청년이 되라." 기독교적 민족주의자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 삼창을 외친 뒤, 전화를 받고 출동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선생은 경성복심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선생은 법정진술에서 평소 민족의 독립을 바라고 있었고, 3월 1일의 독립선언으로 조선은 독립되었고 자주민이 되었으며, 민족자결은 그렇게 독립한 뒤에 우리가 우리나라의 정치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선생은 2년 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1년 11월 4일 오전 만기 출옥으로 마포 공덕리 경성감옥의 문을 나섰다.

출옥 후 선생은 《기독신보》 주필과 조선중앙YMCA 위원 등을 맡아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 때 선생은 중앙YMCA 일요 강화에 연사로 나서 ‘천국이 근(近)하리라’, ‘의로운 청년’ 등을 화두 삼아 민족의 독립이 가까워 왔음을 암시하며, 청년들에게 정의와 인도의 대열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그후,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교포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