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권병덕

2025. 7. 14. 15:18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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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4월 25일 충북 청주군 미원면 성화동(현재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리)에서 태어난 권병덕 선생은 평등한 사회로의 개벽을 주장하는 동학의 교의에 감명을 받고 동학에 입교하게 되었는데요. 입교 이후 1886년 2월에는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이후 동학농민운동의 2차 봉기에도 참여하는 등 동양의 전통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사회개혁을 꿈꾸었으며, 19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천도교를 기반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천도교 간부들

그러던 중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1919년 조선청년독립단의 2‧8독립선언이 일어나는 등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이처럼 독립을 열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천도교에서는 1918년 말부터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이 손병희와 협의하여 조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는데요. 천도교에서는 행정 자치 청원, 독립 청원, 독립 선언의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도교 인사들은 기독교의 이승훈·함태영, 불교의 한용운 등과 협의하여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민족대표의 선정 등을 협의하는 등의 계획을 2월 20일경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1919년 2월 21일. 권병덕 선생은 손병희로부터 민족대표가입을 제의받았고,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후 독립선언서의 제작과 배포, 미국 대통령 및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열국 대표에게 건의서와 일본 정부와 조선 총독에 보내는 청원서의 날인과 제출 등에 대하여 협의 및 서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