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기(趙文紀 1927~2008)

2024. 2. 5. 09:10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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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趙文紀 1927~2008)
독립투사(경기도 화성)

1927년 5월 19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가와사키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에 일하는 한국인 노무자 3,000여명이 참여한 '조선인 멸시 규탄파업'을 주도하였다,

지명수배를 피하여 국내로 돌아온 뒤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에 있는 유만수의 집에서 유만수.우동학등과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하고 국내에서 대일투쟁을 본격적으로 펼칠 것을 결의하였다,

1945년 7월 친일파 거두인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이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라는 친일어용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를 저지하기로 결의하고, 7월 24일 유만수.강윤국등과 함께 부민관에 폭탄 2개를 터트려 집회를 무산시켰다, 이후 조동필.유태현등과 함께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노림리에 은신하며 야학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8.15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에는 대한애국청년당을 재결성하고, 인민청년군을 조직하여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 6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저항하여 인민청년군 사건을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 10년 정도 연극배우 생활을 하다가 1959년 이승만 대통령 암살및 정부전복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을 겪었다,

끼니를 거르는 생활고 속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리기를 거부하다가 사위가 몰래 등록하여 198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후 1983년부터는 광복회 독립정신 홍보위원회의 홍보위원이 되어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고, 1985년부터 8년 동안 광복회 경기도 지부장을 지냈다,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친일 청산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라는 신념으로 투신하였고, 1992년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하여 '친일인명사전'편찬 사업에 전념하였다,

2006년 11월 골수종과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8년 2월 5일 별세하였다, 장례는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한 겨례장으로 치러졌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