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홍원식 선생(1877~1919.4.15)

2024. 4. 15. 11:04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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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홍원식 선생(1877~1919.4.15)

제암리 학살사건으로 희생된 두렁바위 독립군

...일본인 순사 처단과 주재소 및 두 개의 면사무소를 파괴할 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선동하여 군중들에게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포위하고, 먼저 돌을 던지고, 곤봉으로 문을 파괴하게 한 뒤에 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 순사를 타살하기로 했다.

이것은 주도면밀한 사전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고, 이는 곧 실행에 옮겨졌다. 3ㆍ1운동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날 시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면사무소 및 주재소의 파괴와 일본 순사의 처단이었다.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은 서울에서 3ㆍ1운동이 일어난 것도 미리 알고 있었으며, 독립에 대한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제암리에 도착한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이고 제암리와 인근 마을의 주민 약 20여명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했다. 이때 홍원식 선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주민들과 함께 교회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아리타는 주민들을 교회 안에 가둬 놓고 출입문과 창문을 잠근 채 부하들에게 불을 지르고 집중 사격을 명령했다. 제암 교회는 총성과 함께 불타오르며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진 것이다. 이 만행으로 홍원식은 주민 20여 명과 함께 순국하였다. 이날 이런 만행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현장에 달려 온 홍원식의 부인 김씨도 일본군의 총격에 사망하여 부부는 홀로된 자식을 남기고 한줌의 재가 되었다. 불타는 교회에서 뛰쳐나와 목숨을 건지려던 이들 모두 총에 맞아 순국하였고, 남편을 찾아온 부인들 또한 순국했다. 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제암리 마을의 가옥들에 불을 지르고, 이웃 마을 고주리로 가서 천도교 신자 6명을 나무에 묶어 총살했다. 발안 만세 운동과 우정ㆍ장안면 만세 운동의 핵심 인물인 고주리의 김흥렬과 그 일가족은 참살당했다. 죽은 이들은 재가 되어 산화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원한은 통곡으로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