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0. 00:47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허은 선생
여성 독립운동가 고(故) 허은(1907∼1997·사진) 여사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된다. 행정안전부는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행사’에서 허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는 등 독립유공자 177명에게 정부 포상을 한다고 5일 밝혔다.
경북 구미 출신인 허 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서간도로 망명한 후 1932년 귀국할 때까지 서로군정서 회의를 지원하는 등 무장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허 여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이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안동 임청각의 3대 종부로 잘 알려져 있다.
허은 여사는 1915년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망명한 허씨 일문을 따라 만주 영안현으로 이주했다. 열여섯 살이던 1922년 고성 이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1932년 시조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서거로 귀국할 때까지, 석주 선생과 시아버지 동구 이준형 선생, 그리고 남편 이병화를 뒷바라지하며 만주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온갖 고난을 함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생한 회고담을 남겨 1995년 7월『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라는 제목으로 초간되었다.
이 책에는 매년 8월 29일 국치일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 망국을 주제로 한 연극을 보고 국치일 노래를 목 놓아 불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열여섯 나이에 영안현 철령허에서 화전현 완령허까지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이천팔백 리를 꼬박 열이틀 걸려 시댁에 도착한 일, 이청천 신숙 황학수 이범석 등 당대의 지사들이 참석한 서로군정서 회의에 대한 목격담, 석주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을 사임하고 상해에서 돌아올 때 변복·변장하여 왜경의 감시망을 뚫고 무사히 도착한 일화, 석주 선생 서거 후 귀향길에 중국군 패잔병들에게 갖은 곤욕을 치른 끝에 선생의 유해를 화전현에 가매장하고 밤길을 타고 어렵게 귀환한 비사 등 독립운동 명가의 역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눈물겨운 증언들이 낱낱이 담겨있다. 1932년 허은 여사는 ‘고택제향(古宅祭香)에 호화반석(豪華磐石)’ 같은 고성 이씨 가문의 종부(宗婦)로서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다가 안동 임청각으로 귀향했지만, 가산은 독립운동에 이미 소진한 뒤라 시부모 봉양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빈한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945년 그토록 염원했던 해방은 이루어졌으나 조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며 독립운동세력은 어처구니없게도 탄압과 홀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마저 유명을 달리하자 가세는 더욱 기울어져 갔다. 그러나 허은 여사는 고립무원의 지난한 처지에서도 좌절을 딛고 일어서 7남매를 올곧게 키우는 데 힘썼다. 그러던 중 1962년 석주 선생께 건국훈장 독립장이, 1990년 시아버지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남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아울러 같은 해 일가인 이승화 이봉희 이상동 이광민 이운형 이형국 선생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이 추서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독립운동 명문으로 공인되었지만, 안살림을 전적으로 책임졌던 허은 여사는 서훈의 영예도 사적에 기록되는 영광도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지나온 구십 평생 되돌아봐도 여한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고달픈 발자국이었긴 하나 큰일하신 어른들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라며 겸손해했다.
결국, 임청각에선 허은 여사가 수훈함으로써 모두 10분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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