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 09:46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신팔균 선생(1882.5.19~1924.7.2)
" 압록강 이남으로 밀고 내려가
일본 경찰대를 섬멸하라! "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대한통의부 의용군 사령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국권이 빼앗겼던 1900년대 초 우리나라는 국권회복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일화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과 집안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을 하다 순직을 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신팔균 장군은 우리에게 친숙한 김좌진, 홍범도, 김동삼 장군들과 함께 중국 만주를 무대로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던 아주 대표적인 무장투쟁가입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유비-관우-장비가 맺은 도원의 결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우리 독립사에도 이런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청천, 김경천, 신팔균 장군을 남만삼천이라고 불렀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했던 3명의 위대한 장군들, 신팔균은 '동천' 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조선 판 도원의 결의를 맺게 됩니다.
신팔균 장군은 대대로 군인 집안이었으며, 자연스럽게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성장하였으며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뒤 1903년에 육군 참위로 임관합니다. 오늘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는것과 같습니다. 1907년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신 장군은 군 복무를 그만두었고, 1909년 비밀 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단에 가담하면서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1910년 결국 국권이 완전히 상실되었고, 신 장군은 만주로 망명한뒤 서간도에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서로군정서와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수 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양성하였습니다.
1920년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광한단 이라는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들과 여러 무장단체들을 합하여 임시정부 성격인 대한통의부가 설치되자 대한통의부 직할부대인 '대한통의부 의용군'의 사령관과 군사위원장을 맡게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부대인 한국광복군을 기억할것입니다. 미국 정보부대인 OSS와 함께 서울진공작전을 펼쳐 우리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독립을 되찾을 만반의 준비를 했었던 바로 그 부대말입니다. 한국광복군의 서울진공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얻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대로된 작전한번 실행해보지 못하였지만, 대한통의부 의용군은 실제 작전을 수행하여 일본군과 여러번 격전을 치뤘고 승리를 얻어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평안북도 지역에서 일본경찰과의 전투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신장군은 1924년 여름 야외 군사 훈련 중 중국인 마적들의 기습 공격에 총상을 입고 사망하게 됩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일제와 싸우다 전사하지 못함을 억울하게 생각했다던 장군.. 사실 이들 마적단의 기습은 일제의 사주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남편이 전사한 후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부인 임수명은 자결을 선택합니다.
신팔균 장군은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지키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항일 투쟁을 하였으며, 군인으로서 가정의 안위와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독립을 위해 싸우다 적의 총탄에 장렬히 순국한 숭고한 애국정신의 소유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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