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금동 선생 1925.12.16. – 2019.07.08.

2024. 7. 8. 10:45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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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금동 선생 1925.12.16. – 2019.07.08.



이명: 박한식(朴韓植)

본적: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제징용 학도병, 탈출후 광복군 입대

OSS 냅코 프로젝트 참여한 애국지사


후손의 제보를 통해 박금동 (이명 박한식)

애국지사를 세상에 알립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수있어 감사합니다.

시대의 과제속에서 보여주었던

그날의 용기들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오래도록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박금동 선생은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에 배속되었다.  강제 징집되어 군속(군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탈출한 선생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했다.  1942년 11월 3일이었다. 광복군 제2지대(支隊) 대장 이범석 휘하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광복군의 국내 진입 작전에 따라 미군으로부터 정보학(情報學) 실전 분야인 첩보 수집과 분석‧독도법(讀圖法) 등을 익혔으며, 각종 폭발물 취급 기술과 무전기 조작 및 암호문 해독 등을 터득하였다. 또한, 유격 전술에 필요한 각종 화기 조작법‧도피 및 습격 요령‧요인납치 및 민중선동 등에 대해서도 익혔다. 바로 광복 직전 독립군의 비밀부대, 한미특수훈련 OSS 훈련이었다.



OS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기관인 전략첩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약자다. 한국광복군을 OSS 대원으로 훈련해 국내 진공 및 대일공격 작전에 참여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훈련이 진행됐다.



중국 시안에서 훈련이 시행되어 1945년 8월 4일 광복군은 OSS 훈련 제1기생을 배출했으나, 일제의 패전 선언으로 국내 진공 작전은 전개되지 못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