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8. 21:51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서일 선생(1881.2.26~1921.9.28)
강철 같은 항일정신, 불퇴전의 무력으로 일제를 격파하자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청산리 대첩에 빛나는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 선생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영웅 중 한명입니다. 청산리전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 전투의 실질적 지도자인 서일 선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것이 안타까운 일인데 요즘은 한국사시험과 공무원 시험에서 서일선생에 대하여 조금씩 나오는것같아 매우 기쁩니다.
군인이 되기 전 선생은 교육에도 종사했고 종교에도 종사했었으며 심지어 언론사에서도 일했던 다재 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이 총을 들고 만주지역에서 그 누구보다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즉 나라를 지킴에 있어서 직업에 귀천이 어디있으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조국을 되찾으려는 심정은 나라를 빼앗겨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공감하기 힘든 엄청난 무게일겁니다. 평범한 국민이며 지식인이었던 사람들, 그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장군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날 만큼 말입니다.
서일 선생은 18세가 될때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습니다. 이 이후의 20대의 기록이 없는데 역사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시기에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신과 역사를 가르쳤다고 추정됩니다. 선생이 25세가 되던해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30세가 되던해 나라를 빼았겼기 때문에 청년 서일의 가슴속에 무엇이 피어나고 있었을지, 이미 무엇이 생겨났을지 충분히 짐작이됩니다.
당시 선생은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보입니다. 수많은 교육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선생또한 명동학교에서 독립정신을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시작합니다. 혹자는 이 명동학교를 서일선생이 설립했다는 주장도하지만, 기록에는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당시 선생이 교편을 잡았던 명동학교는 대종교 학교였는데 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하며 민족의 얼, 정신, 뿌리를 강조하는 신념에따라 독립군들에게 엄청난 정신력과 사기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선생의 첫 의병규합이 일어났는데 두만강을 넘어 망명해오는 대한의 열혈청년들이 줄을 이을때 북간도 지역에서 일본과의 항전을 위하여 의병을 규합, '중광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중광단의 단장으로서 활동한 서일선생은 대종교를 믿었던 모든 신자들을 독립군으로 육성하였고 종교와 군대를 일치시켜버립니다. 이 힘은 막강했습니다. 훗날 북로군정서 군의 대부분 장병은 대종교인이었습니다.
중광단의 군대로서 확장될무렵 선생은 한가지 문제점에 봉착했습니다. 바로 금전문제. 어떠한 조직이든지 자금이 필요한대 자금에 한계가 온것입니다. 이에 선생은 김좌진, 김동삼, 신팔균, 신채호 선생등과 함께 <무오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고 <일민보>, <신국보> 라는 2개의 신문을 발간하여 무장독립을 주장하는 한편 군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7월 역사에 남는 대첩, 청산리 전투가 전개되었고 이 후 선생은 중광단을 북로군정서로 확대하였으며 러시아군과 체코군으로부터 3만여 정의 무기를 구입하였습니다. 그 후 일제 정규군 3천 3백여명을 사살하는 대첩의 연승을 거두며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장군이 됩니다.
훗날, 자유시 참변이라 불리는 독립군의 강제 무장해제요구와 기습등으로 청년독립군들과 동포들을 잃은 선생은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라고 유언을 남기며 마을 뒷산 산림 속에서 자진 순국했습니다.
무장독립투쟁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뽑으라면 우리는 한 목소리로 자유시참변을 말합니다. 독립군끼리 서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천명을 학살한 비극적인 사건... 어떻게 만든 독립군이며, 어떻게 양성한 병력인데 이 시기에 이러한 이념으로 인해 서로를 죽이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 당시 지휘관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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