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고광순 선생(1848.2.7~1907.10.16)

2024. 10. 16. 10:19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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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고광순 선생(1848.2.7~1907.10.16)

임란 의병장 고경명의 후손,
구한말 의병장으로 다시 칼을 잡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의 혈손(血孫)으로 태어나다
고광순에게는 그가 의병전선의 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명분이 주어져 있었다. 그 첫째는 일제의 극심한 경제침탈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을사조약 늑결 후 광무황제의 밀칙이 내려와 있었다는 사실이며, 셋째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저명한 의병장의 직손으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의병을 일으켜야 했던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계기로 청일전쟁을 도발한 직후부터 일제는 대한침략정책을 한층 강도 높게 진행시켜 갔다. 1895년에 들어와 나라에 대변고가 두 번이나 연이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고광순은 드디어 항일구국의 기치를 들게 된다. 민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그것이다. 일제는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의 정치적 우위를 러시아에게 빼앗김에 미쳐 1895년 8월 배일파의 핵심인물로 명성황후를 지목, 극악무도하게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10월에는 민족 자존에 일대 타격을 가하는 단발령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고광순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국왕에게 상소를 올려 “국사를 그르친 괴수를 죽여 국법을 밝히고 나라를 망치는 왜적을 빨리 무찔러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하면서 을미사변의 원흉들을 단죄할 것을 통렬하게 주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