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7. 23:26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송종익 선생(1887.2.27 ~ 1956. 1.7)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
우둑서 바람에 날리고, 장하다 네 빛 네 정신아, 기러기 펄펄 일어나고, 둥그럼 훨훨 지어온 바, 우러러 네게 경례하며, 갖추어 내가 노래하며, 높고 깊은 근심 걱정이, 한 없이 절로 위로되네, 백두산 바라는 남녀야, 황홍백남 자랑하오, 기초준비 튼튼히 기해, 한길로나아 가세. -흥사단에 대한 선생의 시
송종익 선생은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에서 활동하셨던 독립운동가 분입니다. 선생은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난뒤 민족운동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족운동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던 중 1908년 3월, 일본이 우리나라의 침략과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당시 우리나라 외교고문인 스티븐슨이 발언하자 이를 처단한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재판이 열렸는데, 이때 두 영웅의 재판후원회를 결성하고 후원회의 재무로 임명되어 당시 공판과정을 '독립재판' 으로 전개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냅니다. 재무의 임무상 변호사 교섭 및 재판 후원경비조달등을 주로 맡았으며 재판과정을 미국포함 많은 나라에 알려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전파하는데 큰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후 선생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독립운동가 홍언 선생과 함께 '흥사단'을 창립하였고 안창호 선생과 함께 북미실업주식회사를 조직한뒤 쌀농사를 통해 독립운동 군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10년간 진행했습니다.
비록, 목표한 군자금 수치에 미치지 못하고 여러가지 난관이 있어 실패로 돌아갔지만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미국에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선생은 다양한 협회를 조직하고 만들며 다양한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1919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 & 송금하는 역할을 주도했던 인물중에 하나였으며 훗날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 단체들의 분열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던 임시정부의 재정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숨겨진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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