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14:17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이대산 선생(1923.3.31 ~ 2020.02.16)
항일연합군 유격대장, 일본군의 A급 현상범
중략-
선생은 1923년 강원도 이천(伊川)에서 태어나 14살이던 1937년 만주로 건너갔다. 독립군 연락원이 되어 활동했다. 잠시 국내에 들어와 민족의식 함양에 전념하다 1942년 다시 만주로 가서 한만중(韓滿中)유격대장이 되었다.
선생은 1944년 12월 하얼빈 근교에서 일본군 수송열차를 급습했다. 1945년 5월 도문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8월 16일이 사형 집행일 인데 하루 전인 15일에 해방이 되면서 사형을 면했다. 하늘이 돕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77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대산 선생의 외손자인 최길성 교사는 2014년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할아버지는 일본군의 ‘A급 현상범’이었다고 전했다. 최 씨는 외할아버지가 담담한 마음으로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대산 선생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일본 치하에 있는 조국과 동포들이 더 걱정되었을 것이다. 만일 일본이 8월 16일이나 그 이후에 항복했다면 이대산 선생은 사형장의 이슬이 되었을 것이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이대산 선생은 해방 된 후 사무관으로 특채되었고 여러 세무서와 청와대 등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서울에 살고 있는데 고령이라 전화 통화가 쉽지 않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복절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고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다.
올 광복절을 맞는 이대산 선생의 감회는 여느 해와 또 다르다. 나라를 생각하면 감회라기보다 차라리 마음이 아프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으면 대한민국이 당연히 통일이 되어 평화롭게 살아야 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로 인해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대치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세무공무원 가운데 이렇게 훌륭한 독립유공자,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애국자가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의 기쁨이고 자랑이다. 세무공무원들은 나라의 살림이 잘 돌아가도록 세수를 책임지는 현장의 일꾼들인데 이대산 선생같은 분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김재영 광복회 홍보팀장은“독립운동이나 저격범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은 나 자신의 이익과 안일만을 생각하는 요즘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며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대산 선생. 세월을 거스를 수 없어 육신은 점점 쇠약해지지만 국가와 민족, 국민을 생각하는 나라사랑 정신은 우리의 기억 속에 더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대산 선생을 바라보며 무엇이 진정한 나라사랑인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내 몸을 던지는 것, 그게 바로 개인주의에 물든 우리들이 배워야할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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