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민찬(金玟贊) 선생

2023. 9. 13. 09:30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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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민찬(金玟贊) 선생

1902년 11월 19일 - 1950년 11월 20일



1927년 수원(水原)고등농림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6년 여름 김성원(金聲遠) 등 동교의 한국인 학생 10여 명이 농민대중 계몽을 통한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조직한 비밀결사 건아단(健兒團)에 가입하여, 다른 단원들과 함께 화성군(華城郡) 안용면(安龍面) 고견리(古牽里)를 비롯한 인근 여러 마을에 농민야학을 설립하고 농민의식과 항일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6월경 건아단은 「조선의 농촌개발은 조선인의 힘으로」라는 취지 아래 일본 동경에서 조직된 조선농우동맹(朝鮮農友同盟)에 가맹하여 동맹의 국내 지방강연 활동에 조력하던 중, 연사로 참석한 수원고농생 한전종(韓典鍾)이 무기정학을 당하자 단의 명칭을 계림흥농사(鷄林興農社)로 바꾸고 비밀리에 조직을 확대하였다. 그런데 졸업 후 김해(金海)농업학교에 근무 중이던 김성원이 서신 내용으로 인하여 일경에 피검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계림흥농사는 다시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개편한 뒤, 농민과 청소년들에게 항일독립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계몽활동을 계속해서 펴 나갔다.


그러나 김성원의 피검 사건이 확대되면서 조선개척사의 조직과 활동상황이 일경에 포착되기에 이르러, 결국 회원 전원이 1928년 9월에 피체되었다. 피체 후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1년 5개월여의 예심기간 동안 구금되어 있다가 1930년 2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면소(免訴) 판결에 의해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544∼547·556면
동아일보(1928. 9. 16, 1930. 2. 21)
한국독립사(김승학) 상권 226·227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673∼6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