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5. 22:59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송병조 선생(1877.12.23~1942.2.25)
당을 세워 나라를 다스린다,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여 일제와 싸우다
구적분투, 일제에 무력으로 대항하여 파괴하라
이당치국, 당을 세워 나라를 다스린다 - 송병조 선생 어록
송병조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지만, 30대 중반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신학교라고해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목회의 길을 걷는 신학교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시 평양신학교는 신앙과 민족정신을 가르치는 학교였으며 실제로 이승훈, 길선주, 이명룡 목사를 배출한 서북지역 독립운동가 본거지였습니다. 이 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1917년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를 조직하여 비밀리에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해외 독립운동단체와 연계하여 독립군 기지 개척운동까지 전개하였다. 오늘날 신학교와는 여러 의미에서 많이 다르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평양신학교를 다닌 선생 또한 민족 독립의지가 충만한 독립운동가이자 목사가 되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용천지역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민족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같은 해 10월. 선생은 전국에 있는 각 도의 대표 24명이 '대한국민총회'를 창립할 때,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담당하였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21년 상해로 망명한 뒤 안창호 선생의 주선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재무부 임원으로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그후 안창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조소앙 선생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결성했고, 임시정부를 옹호, 유지하기 위하여 1935년 김구•이시영•조성환(曺成煥)•조완구 선생과 함께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을 창당하였죠.
한국국민당은, “적의 총세력을 박멸하고 완전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여 위로는 조선의 광휘를 빛내고, 밑으로는 자손 만대의 영예를 발전시킴으로써 세계 민족과 함께 공존 공영을 도모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 정당이었으며 중국 정부와의 활발한 외교 교섭 등을 통해 1940년 9월 충칭(중경)에서 광복군을 창설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조상들이 사랑하여 지켜오던 국가를 구적(仇敵) 일본에게 우리 자손들 때에 와서 빼앗기고 아픈 생활을 하다가 기미운동(己未運動)이 일어나 독립을 선언하고 도수(徒手)운동을 하던 군중이 만적(蠻敵)의 총창(銃槍)과 철구(鐵鉤) 아래 혈육이 분비(紛飛)하는 한편, 당시 국외로 탈출한 인사와 을사(乙巳)•경술(庚戌) 이후 국외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국내 동포의 의지(意旨)에 합응하여 자못 거국일치로써 성립하니 의정원이오 이 정부인데, 이 최고기관을 위하여 많은 동지가 분투도 하고 많은 지사가 적에게 희생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기관이 금일에 이르러서는 형세가 전과 달라진 데 대하여 유감천만(遺憾千萬)이외다. 오직 처음의 뜻을 굳게 잡아 더욱 분투할 따름이외다." - 임시의정원 제28회 정기회의에서 행한 송병조 선생의 개원식 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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