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민긍호 선생(~1908.2.29)

2024. 2. 28. 10:41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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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민긍호 선생(~1908.2.29)

대한제국군인 출신의 의병장, 국권을 빼앗기고 국민이 도탄에 빠졌구나!


국권을 빼앗기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있는 때에 내가 일본에 투항하면 일본 치하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부귀가 8역적(逆賊)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나라를 찾는데 있으므로 강한 도적 왜(倭)와 싸워서 설혹 이기지 못하여 흙 속에 묻히지 못하고 영혼이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떠돌게 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1897년에 군에 입대한 민긍호 선생은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육군 상사시절 우리나라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자주적인 외교권과 재정권이 일본에게 장악되어 버렸습니다. 더욱이 일본은 우리의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켜버리고 군대를 해산시켜버렸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국방력을 말살하여 무방비상태로 만든뒤 완전환 식민지화를 꾀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시기에, 강제 군대 해산 명령을 거부한 우리 군인들은 반일무장투쟁을 전개해나갔고 당시 시위대 제 1연대 제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권총으로 자결, 순국한 것이 기폭제가 되어 제1대 장병들이 봉기하였으며, 이 소식을 접한 시위대 제2연대 제1대대 장병들이 연속으로 봉기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자 민긍호 선생 역시 무장봉기를 결심하였고 원주진위대 병사들을 지휘하여 봉기하였습니다.  당시 선생이 모집한 병사들을 두고 한말입니다.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해산하라는 명령에 복종 할 수 없다."  선생의 지휘아래 원주진위대 병력은 우편취급소, 군아, 경찰분견소를 습격하였고 원주읍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도망치는 일본인, 그리고 도망치지 못한 일본인을 전부 척결하였고 군수물자를 조달하며 급파된 일본군 수비대 부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여 수십명의 적군을 사살하여 격퇴시켰습니다. 결국 일본군 사령부는 서울에 주둔해있던 보병 2개 중대, 공병1개 소대로 추가 공격을 하였으나 이 곳의 지리를 잘 알고있는 선생의 의병부대와 마을 주민들의 은밀한 후원으로 최소한의 피해로 일본군을 괴멸시켜버렸습니다.

당시 가장 큰 의병부대를 이끌고 있던 이강년 의병장과도 협력하여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약 70여 차례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단 한번도 빠지지않고 전부 성공적인 압승을 이루어냈습니다. 선생은 화력의 상승과 기동력을 위하여 의병부대를 소규모의 다양한 편대로 나누었고 각각의 신뢰할수있는 지휘관을 배치한뒤 다양한 전략과 작전을 펼쳤습니다. 이 후에도 선생의 의병부대는 원주, 여주, 이천, 홍천 일대에서 백여 회의 추가 전투를 벌였으며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던 중 1908년 2월 27일. 선생이 직접 지휘하는 의병부대는 원주 강림 박달치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대와 접전을 벌이게 되었고 여러개의 산을 뛰어다니며 치열한 전투가 밤새 이루어졌는데 상호 교전이 길어지자 의병부대는 탄환이 고갈되었고 결국 일본군에게 촌락을 점령당했으며 이 때 선생또한 적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중간 지휘관들은 상황을 판단하고 일단 후퇴하였다고 그날 밤 바로 선생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군 숙영지를 공격하였고 의병부대 병사들은 부족한 화력에도 목숨을 걸고 싸우며 모두가 일제히 "우리 대장 민씨는 있는 곳에서 소리 지르라!" 고 외쳐대며 사생결단의 자세로 전투에 임했습니다. 우리 의병부대의 기백에 놀란 일본군은 상황이 다급해지자 악랄하게도 선생을 그 자리에서 사살하고 전부다 후퇴해버렸습니다.

일본의 강제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1907년 8월 5일 의병부대를 만든 선생은 1908년 2월 29일 일본군에 의하여 접전지 현장에서 피살, 순국하였습니다. 한번 계산을 해봤습니다. 약 7개월 시간동안 100번이 넘는 치열한 전투. 2틀에 한번 꼴로 전투가 일어났다는 말이고, 떄로는 수일간의 장기전이 지속된적도 있다는 의미일겁니다. 선생의 마지막은 이러했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자신의 남은 삶을 정말 하얗게 불태웠던 의병장.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잊혀진 영웅중 한명입니다.

"내가 일본에 투항하면 일본 치하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부귀가 8역적(逆賊)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나라를 찾는데 있으므로 강한 도적 왜(倭)와 싸워서 설혹 이기지 못하여 흙 속에 묻히지 못하고 영혼이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떠돌게 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강원도 관찰사의 귀순 권유에 대한 선생의 거부 답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