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7. 16:42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박시창 선생(1903.11.5 ~ 1986.6.7)
본관은 밀양(密陽).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朴殷植)의 맏아들이다. 부친이 세운 서울 오성학교를 1916년에 졸업하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부친 박은식, 박경산, 박태하, 황훈, 최중호, 김문세, 이영운 등과 함께 『사민보』를 발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3년경 남경 중앙대학에서 수학하였고, 1926년 근대적인 군사교육을 받기 위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인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제5기로 입교하였다. 이후 중국 국민혁명군 포병대에 편입되어 제1차 북벌전쟁에 참전하였고, 1927년에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경 황포군관학교 동문인 진공목, 진갑수, 안재환, 김영재, 송욱동, 장기준 등과 중국군 기술교관으로 있었던 백득림, 홍의균, 권준, 전창무, 노세방 등과 같이 의열단 무창지부의 전신인 무한한인혁명청년회(武漢韓人靑年會)를 조직하고 군사훈련과 독립운동의 선전사업을 펼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8년 남경의 군관단(軍官團)에 입대하고, 1929년 국민혁명군 경위군(警衛軍)을 거쳐 1935년경 김구가 주도하는 중국군관학교 입교생 모집활동에 협력하였다.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항일무력투쟁을 계속하던 그는 1941년 당시 중국 최고의 군사교육과정이었던 중국 육군대학에 들어가 군사학을 연구하였다.
이후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의용대와 조선광복군에서 참모로 활약하였고, 광복 이후 일본군에 동원되었던 한인청년들을 한국광복군에 편입시키기 위해 힘썼다.
8·15광복 후 귀국하여 국군창설에 참여하였고, 6·25전쟁을 전후하여 연대장·사단장·군단장 등을 역임한 뒤 1959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하였다. 만년에는 별다른 공직을 가지지 않고 지내다가 1976년 안춘생(安椿生)의 뒤를 이어 제5대 광복회 회장으로 일하였다.
선생의 첫째아들은 국가보훈처 처장을 지낸 박유철(朴維徹)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국무령을 지낸 양기탁(梁起鐸)의 손녀 양준자(梁俊子)와 결혼하였다.
선생은 1986년6월 7일 향년 84세로 별세하였으며 선생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현재는 선생의 장남 박유철(朴維徹) 또한 광복회 회장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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