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룡 1901-1932.6.13

2024. 6. 13. 15:45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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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룡 1901-1932.6.13



강주룡 선생은 14살에 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이주했다.  그 후 6년 뒤 20살이 되던 해 남편 최전빈 선생과 결혼했다.



그러던때 선생의 삶을 송두리쨰 뒤바꿔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남편 최전빈 선생이 항일독립운동을 참여하다 사망했고, 강주룡 선생은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귀국 후 선생은 평원고무공장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고무공업계도 타격이 심각했다.



1930년 5월 23일, 서울에서는 전조선고무공업자대회가 열려 임금 인하를 결의하였고, 8월 1일에는 평양고무공업조합에서 기존 임금의 17% 삭감을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통고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강주룡 선생은 같이 일하는 평원고무공장의 직원들과 함께 임금 삭감 반대 운동, 단식 운동, 고공 시위 등에 앞장섰다. 이러한 활동으로 선생은 감옥에서 1주일간 있었지만, 투옥전 74시간 단식을 진행했던 탓에, 신경쇠약, 소화불량등의 증세로 보석 출감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고 출감 두 달만에 3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