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남일 선생 ( ~1910.10.4 )

2025. 10. 8. 23:57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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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남일 선생 ( ~1910.10.4 )

― 남도 제일의 의병장, 시로 맹세하고 칼로 지켜낸 사람

초야의 서생이 갑옷을 떨쳐 입고
말을 타고 남도를 바람처럼 달리리
만약에 왜놈을 소탕하지 못한다면
맹세코 모래밭에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
— 1907년, 의병으로 나서며 지은 시 중에서

심남일 선생은 시인이자 장수였다.
붓을 내려놓고 칼을 든 그 순간, 그는 이미 역사의 한 줄이 되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그는 호남 지역의 의병장으로 봉기했다.
전라도 곳곳을 누비며 일본군과 끊임없이 교전했고,
‘남도 제일의 의병장’이라 불리며 수많은 청년들에게 항일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의 전투는 단순한 무력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시인이자 학자였던 사람의 신념이 있었다 —
‘정의로운 죽음은 가장 완전한 삶’이라는 신념 말이다.

일제는 그를 두려워했고, 끝내 1910년, 나라의 멸망과 거의 동시에 그는 체포되어 순국했다.
그가 남긴 시와 이름은 기록의 틈새에서 희미해졌지만,
그의 맹세는 남도의 바람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작가의 생각

나는 오래된 기록에서 한 줄의 시를 보았다.
“초야의 서생이 갑옷을 떨쳐 입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사진 복원가로서의 나보다 먼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떨림이 찾아왔다.

흑백 사진 속, 한 점의 그림자처럼 남은 얼굴.
그 안에는 분노가 아니라 결의, 그리고 시를 쓰던 손의 섬세함이 함께 있었다.
사진의 결을 살리며 복원해나가는 동안, 나는 그의 눈빛 속에서
칼을 든 시인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의 이야기를 좇다 보면 늘 ‘선택의 순간’에 닿는다.
붓을 들 것인가, 칼을 들 것인가.
심남일 선생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가 남긴 흑백의 침묵을 색으로 되살리는 붓을 들고 있다.

복원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모래밭에서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라며 바람처럼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선언이었고, 그 선언은 지금도 여전히 자유를 향한 맹세의 문장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