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8. 20:05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이석용 선생(1878~1914.4.28)
만 번 죽어도 변치 않는 의병장
임금과 부모의 은혜와 의리 하늘과 같아 만 번 죽어도 그 공을 갚을 길 없네. 태어나던 날 아침 장부의 뜻 저버려 부끄러워도 편안히 감옥 가운데 홀로 있다네. -생일날 대구 감옥에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때 우리나라에서는 의병봉기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석용 선생은 최익현 선생과 임병찬 선생이 일으킨 태인의병에 가담하여 나라를 구하려 했으나 선생들이 체포되어 의병부대가 해산되자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일으켰습니다.
1906년 한 해, 동지 고광수 선생과 치밀하게 준비를 한 선생은, 마침내 호남창의소라는 의병부대를 창립하였고 의병장이 되었습니다. 호남창의소는 만들어진 직후부터 혁혁한 성과를 내어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힌 의병부대중 한 곳인데, 의병부대가 만들어진 직후 선생은 진안읍을 공격하였고 헌병분파소와 우편취급소를 파괴하였습니다.
1907년이 되자 선생은 의진약속 의령10조를 세워 의병부대의 사기와 전투력을 향상시켰으며 일제 시설물과 친일세력인 일진회와, 자위단의 처단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임실, 장수, 남원, 함양, 구례 지역을 비롯한 전라도와 경상도를 무대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는데 선생의 의병부대 '호남창의소'는 독립운동사에 나오는 가장 오래 성공적으로 지속된 의병부대 입니다. 약 3년간 선생이 잡히지 않고 끊임없이 크고작은 전투에서 성과를 내자 일제는 선생을 붙잡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합니다. 수시로 밀정을 투입하고 진압작전을 벌이자 선생은 다음번 공격을 기약하며 의병 임시 해산을 선언합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본에 완전히 뺏기게되자 선생은 '의령단'을 설치하여 일제와 싸우다 정의롭게 전사한 의병들을 추모하였고 의병들의 전의를 가다듬기 시작합니다. 이때 선생은 일본천황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러한 점들이 다른 의병부대와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의지를 선생은 1912년 비밀결사대인 '임자밀맹단'을 세워 실현하였는데 테라우치 총독, 을사 5적, 정미7적을 처단하고 일본 도쿄와 오사카 등 주요 도시에 방화를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이러한 계획이 빛을 발휘하기전 밀정에 의해 1913년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재판장에서 선생은 '대한의 닭이나 개가 될지언정 원수 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라고 말하였고 1914년 4월 28일 사형 직전 마지막 말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셨습니다.
천고의 강상을 짊어짐은 중요하고/ 삼한의 해와 달은 밝게 비치는데/ 외로운 신하 만 번 죽어도 마음 변치 않으니/ 사람으로 머리 숙여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네.
선생의 의병부대와 활약은 조선의 수많은 청년 애국지사들에게 불꽃이 되었고 귀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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