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치보 선생 (1859.9.17 ~ ?)

2025. 11. 21. 17:13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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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치보 선생 (1859.9.17 ~ ?)

“연해주의 혹독한 바람 속에서, 의로운 노인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평양의 한 소년은
나라가 흔들리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성장했다.
그의 이름 — 김치보.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가 걸어간 길은 분명하고 단단했다.

-평양에서 자라 연해주로 — 한인의 삶이 뿌리를 옮기던 시절

1859년 평양 출생.
조선 말, 정세가 어두워질수록 많은 이들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와 연해주의 새로운 터전을 향했다.
김치보 역시 1908년 무렵,
나라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기에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그곳은 한인 독립운동의 핵심 기반지가 되어가던 시기였다.
연해주는 조선인들에게 더 넓은 숨통을 열어주었고,
바로 그곳에서 선생은 그의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덕창국(德昌局) — 약방이자 사랑방, 그리고 독립운동의 비밀 기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치보는
한약방 **‘덕창국’**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약방이 아니었다.
   •   연해주로 망명해온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
   •   광복 의지를 공유하던 동지들의 회합 장소
   •   피 난민과 노동자들이 몸과 마음을 의탁하던 쉼터
   •   비밀 연락망의 중심지이자 군자금 전달 통로

덕창국은 조용한 이름 아래
격렬한 시대를 견디던 사람들의 심장이었다.

러시아 경찰의 감시가 점점 심해졌음에도
김치보는 그곳을 굳건히 지키며
누군가에게는 약을,
누군가에게는 식량을,
누군가에게는 독립의 용기를 주었다.

-대한노인동맹단 — 노년의 몸으로 앞장선 항일투쟁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이지만
김치보에게 ‘노년’은 결코 물러남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연해주 독립운동 조직 중 하나인
대한노인동맹단의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대한노인동맹단은
그 이름처럼 ‘늙은이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그들은:
   •   젊은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고
   •   연락망을 구축하며
   •   군자금을 모으고
   •   의거를 은밀히 준비하는
숨은 거대한 힘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연해주의 항일운동은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강우규 의사의 사이토 총독 폭살 의거 — 뒤에서 뿌리를 지탱한 사람들

1919년 9월 2일.
강우규 의사는 서울역에서
새 총독 사이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온 조선을 뒤흔들었던 항일 의거였다.

그 거대한 결심 뒤에는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조용한 헌신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김치보 선생은 의거를 준비하던 강우규를 비밀리에 지원한 핵심 인물로 기록된다.
   •   연락 지원
   •   자금 조달
   •   은신과 이동 보조
   •   연해주 독립운동가 네트워크 활용
그는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감당했다.

이름은 크게 비치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기록은 희미하지만, 정신은 살아 있다

김치보 선생의 말년은 상세히 남아 있지 않다.
사료는 조용히 끊기고,
정확한 순국일도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생이 흐릿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이름보다 행동으로 살았던 사람,
빛보다 그림자 속에서 더 큰 일을 했던 사람,
누군가의 방패이자 누군가의 숨통이었던 존재였다.

그 침묵의 노력이 있었기에
더 많은 이들이 살아남아
조국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