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4. 09:02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강우규 선생(1855.7.14~1920.11.29)
노익장으로 조선을 깨운 민족의 교육자
1919년 9월 2일 저녁, 서울 남대문역.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열차에서 내려 마차에 오르는 순간,
한 개의 폭탄이 어둠을 가르고 날아올랐다.
그 자리에서 수십 명이 즉사했고 일제의 심장을 겨눈 의거는 조선을 뒤흔들었다.
며칠 뒤 검거된 인물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폭탄을 던진 이는 칼을 벼르는 청년이 아니라, 65세의 백발 노인 - 강우규 선생이었다.
- 나라가 무너진 뒤, 교육으로 불씨를 지키다
강우규 선생은 본래 한약방을 운영하며 지역의 청년들을 돌보고 학교를 세우던 교육자였다.
고종이 물러나고,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나라의 기둥이 무너져 내릴 때
그에게 가장 크게 가슴을 두드린 것은
“청년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였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그가 평생 가장 많이 되뇌던 말이다.
그런 이유로 1911년, 이미 50대 중반이었던 그는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향했다.
100년 전의 50대는 지금의 70대와 비슷한 무게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학교를 세우고 교편을 잡으며
망명민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 3·1 이후, 노인들이 일어선다 ― 노인동맹단의 결성
1919년 3월, 조국에서 만세 소식이 들려오자
강우규 선생은 북간도에서 독립선언서를 들고 만세 시위 선두에 섰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이승교·박은식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 **‘대한노인동맹단’**에 가입했다.
회원 대부분이 46~70세.
“조국의 운명은 늙은 세대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믿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고
직접 경성까지 내려와 태극기를 흔들고 연설하다 체포되는 등
그 나이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 서울로 칼바람을 넘다 ― 사이토 총독 처단 계획
노인동맹단이 강경파를 대표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조선 총독을 처단하자.”
그 임무는 스스로 가장 먼저 나선 강우규 선생이 맡았다.
러시아에서 폭탄을 구해 품에 안고
원산을 통해 비밀리에 서울로 들어왔다.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사이토 총독의 동선을 새겨 넣은 다음
1919년 9월 2일, 의거는 실행되었다.
3·1운동 이후 첫 무장 의열투쟁이자
65세 노인에 의해 이루어진 전무후무한 행동이었다.
그가 남긴 말처럼
“청년들에게 작은 충격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단 한 번의 선택이었다.
- 옥중에서도 꺾이지 않은 기개
검거 이후의 심문 과정에서도
선생의 목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무엇이 두렵겠느냐”는 듯
일제의 법정 앞에서 당당히 독립의 정당성을 밝혔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사형 직전 검사가 감상을 묻자
그는 고요한 표정으로 한 수의 시를 읊었다.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부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외침.
“조선 청년들이여, 깨어나라!”
그의 생은 그렇게 65세의 노익장으로 빛났고
그의 죽음은 수많은 청장년들에게 불씨가 되었다.
이듬해부터 김원봉의 의열단, 김구의 한인애국단 등
무장투쟁의 흐름은 더욱 거세졌다.
강우규 선생의 의지가 살아 뛰는 기세였다.
- 작가의 글
강우규라는 이름 앞에서는
조용한 감동이 먼저 찾아온다.
늙었다는 이유로 물러서지 않았고,
가난했다는 이유로 꺾이지 않았으며,
꿈이 멀어졌다는 이유로 손을 놓지 않았던 사람.
무장투쟁의 현장에서도,
칠흑 같은 옥중에서도 그가 떠올린 것은
늘 청년들의 미래였다.
한 시대가 무너진 자리에서
젊은 한 세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폭탄보다 더 큰 울림이었다.
그날 남대문역의 한순간은
한 노인이 보여준 용기였지만,
그 불꽃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말을 건넨다.
“배움으로 깨어나라.
그리고 깨어난 마음으로 조국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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