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춘배(金春培) 선생 (1904.2.29 – 1946.12.1)

2025. 12. 4. 09:13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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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춘배(金春培) 선생 (1904.2.29 – 1946.12.1)

단신으로 총을 들고 포위망을 넘어선, 조용한 결의의 의열투사

전북 완주 삼례에서 태어난 김춘배 선생의 인생은
평범한 농촌 청년의 길에서 시작되었지만,
끝내 역사의 한복판을 정면으로 가르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 선택은 다름 아닌, 조선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청춘을 통째로 바치는 일이었다.

- 1. 정의부 가입 : 군자금 모금에 앞장선 청년 투사 (1927~1934)

1927년 2월, 스물넷.
선생은 중국 길림성 돈화현에서 정의부(正義府) 에 가맹한다.
이 조직은 만주 한인 사회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갖춘 사실상의 ‘자치정부’였으며
항일 무장투쟁의 중추였다.

김춘배 선생은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며
6차례에 걸쳐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군자금 모금은 단순한 모금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다니며 일제의 눈과 총칼을 피해
독립군의 생명줄을 잇는 일 그 자체였다.

결국 천보산분서에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청진감옥에 수감된다.
감옥에서도 탈출을 시도했지만 붙잡혀 1년 10개월이 추가,
총 8년을 옥중에서 보내고 1934년 5월 14일에 출옥했다.

8년.
한 인간의 청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버틴 시간.

그러나 그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2. 1934년 단신 무장 의거 — 혼자서 무기고를 파괴하다

출옥 후 단 5개월 뒤인 1934년 10월 2일 밤.
선생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면 경찰주재소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단신으로 무기고를 파괴해
다음의 무기를 탈취했다.
   •   권총 2정
   •   기관총 5정
   •   보병총 1정
   •   실탄 700발

이는 한 개인의 행동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담하고 치밀한 작전이었다.

포위망을 피해 달아난 18일 동안
선생은 변장술, 야간 기동, 근접전을 구사하며
일제 경관 여러 명에게 총상을 입히기도 했다.
당시 일본 경찰 기록에는
그를 “유령처럼 사라지고 나타나는 자(鬼神)”라고 표현했다.

-3. 체포와 무기징역 - 그리고 해방을 감옥에서 맞다

선생은 서울로 향하던 도중
10월 20일 신북청역에서 붙잡혔다.
1934년 11월 26일, 함흥지방법원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김춘배 선생은 항소했으나
결국 이를 취하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긴 옥고를 치르며 해방을 맞는다.

조국이 광복되는 순간까지
그의 마지막 12년은 철창 안에서 흘렀다.

광복 후 기력이 쇠한 그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2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작가의 글

김춘배 선생의 삶은 거대한 전투의 기록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끝까지 지켜낸 침묵의 결의에 가깝다.
목숨을 내어놓고 무기고로 들어가던 그 밤,
그의 손에는 총이 있었지만
가슴에는 나라를 향한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화려한 영웅담보다도,
거창한 조직의 수장이 아니어도,
조국을 위한 마음 하나로 끝까지 싸울 수 있었음을
그분의 기록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