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학 선생

2025. 12. 22. 01:43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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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학 선생

두만강을 건너 국내 진공작전을 벌인 대한군정서 소속 독립군

이름 없이 싸우고, 노래로 남은 사람

문창학이라는 이름은 교과서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초상도, 자필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넜던 발자국과, 밤을 가르던 총성,
그리고 한 곡의 노래 속 울음으로 그는 지금까지 살아 있다.

문창학 선생은 1882년, 함경북도 온성에서 태어났다.
국경의 끝자락, 늘 강을 마주 보아야 했던 땅에서의 삶은
나라의 안과 밖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현실을 일찍부터 깨닫게 했다.
두만강은 생계의 길이기도 했지만,
언제든 넘어야 할 운명의 선이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은 문창학의 삶을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만세의 함성이 총검으로 짓밟히던 그해,
그는 간도로 망명해 대한군정서에 몸을 의탁했다.
군정서의 독립군으로 활동하며
일제 군경과 밀정을 색출하고 처단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다.
이 시기의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의 이름이 여러 보고서와 체포 명단 주변을 맴도는 것만으로도
그 활동의 밀도가 짐작된다.

1920년, 청산리전투 이후 만주의 공기는 급격히 변했다.
일제는 패배의 분풀이처럼 만주 전역을 피로 덮었고,
독립군의 거점은 하나둘 무너졌다.
이때 문창학은 물러서지 않고 방향을 바꿨다.
더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더 위험한 길인 ‘국내 진공’을 택했다.

그가 가담한 조직은
김학섭, 김병관 등이 이끈 대한독립군결사대였다.
이 결사대는 소수 정예로 구성된 행동 조직으로,
일제 기관을 직접 타격하고 친일 세력을 처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문창학은 노령 일대에서 무기와 탄약을 마련했고,
14명의 대원과 함께 국내 침투를 준비했다.

1921년 1월 초,
결사대는 웅기항의 일제 기관을 목표로 삼았으나
경계가 지나치게 삼엄하자 계획을 수정한다.
목표는 함경북도 경원군의 신건원주재소였다.

1921년 1월 5일.
문창학과 대원들은 중국 화룡현을 출발해
한겨울의 두만강을 건넜다.
강물은 차가웠고, 돌아올 길은 없었다.
신건원주재소 습격은 성공했다.
일제 군경이 사살되었고,
숙소에는 폭탄이 투척되었다.
짧고 정확한 타격이었다.

이 의거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신문은 사건을 축소해 보도했지만,
헌병과 경찰의 움직임은 그 반대였다.
문창학은 이후에도 훈춘 일대에서 의열 활동을 이어갔으나,
1922년 12월, 동지 13명과 함께 체포되어 청진으로 압송된다.

재판은 형식에 불과했다.
1923년 5월,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은 사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 20일,
문창학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억울함을 풀 기회도,
자신의 이름을 남길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신문은 짧게 기록했다.
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교통총장을 지낸
문창범 선생의 사촌동생이라는 사실을 덧붙이며,
‘위험한 인물’로 분류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짧은 문장 사이에는
국경을 넘나들며 싸운 한 인간의 전 생애가 접혀 있었다.

문창학의 이름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길로 살아남았다.

노래가 된 삶, 《눈물 젖은 두만강》

문창학 선생의 아내는
남편이 억울하게 사형당한 뒤에도
두만강을 떠나지 못했다.
강은 이별의 자리였고,
울음은 매일의 언어였다.

작곡가 이시우는
중국의 한 여관에서 이 울음을 듣게 된다.
그날은 우연히도 문창학 선생의 생일이었다.
억울함과 그리움이 뒤섞인 그 울음은
악보보다 먼저 완성된 노래였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노래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강을 건넌 사람,
돌아오지 못한 사람,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모두 품고 있다.
문창학은 총 대신 노래로,
구호 대신 울음으로 다시 태어났다.

- 작가의 글

문창학이라는 이름은
크게 불리지 않았고,
제대로 기록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선택,
소수로 국내에 들어가는 결단,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죽음은
역사에서 가장 무거운 문장들에 속한다.

이름이 남지 않는다고
삶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삶이
역사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는 조용히 증명한다.

두만강을 적셨던 눈물은
강물로 흘러가 사라졌지만,
그 울음이 노래가 되어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을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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