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9. 17:41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김화영 선생
장날의 함성으로 역사를 흔들다
경상북도 안동 예안.
1919년 봄, 장날의 소란 속에 조용히 숨을 고르던 마을은 어느 순간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김화영 선생은 그날의 중심에 있었다. 만세는 우연히 터진 외침이 아니었다. 며칠 전 밤, 면사무소 숙직실에 모인 이들은 독립신문을 펼쳐 들고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뜻은 하나였고, 날짜는 정해졌다. 예안 장날, 3월 17일.
면사무소의 등사판은 밤새 돌아갔다. 종이 위에는 선언서가 찍혔고, 손마다 태극기가 쥐어졌다. 인근 동리로 소식이 퍼지자, 장터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장꾼으로 가장해 모여들었다. 오후 3시 30분, 약속된 시각. 서른여 명의 주동자들이 선성산에 올라 일본이 세운 대전기념비를 쓰러뜨렸다. 그 순간, 태극기가 하늘로 솟고 만세가 터졌다. 신호는 분명했고, 응답은 거셌다.
김화영 선생은 장터로 내려와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일본 경찰이 시위자를 연행하자, 분노는 다시 불붙었다. 해가 저물 무렵, 군중은 주재소로 달려가 포위를 하고 석방을 요구했다. 무력으로 막아서자 돌이 날아들었고, 주재소는 파괴되었다. 일본 경찰 세 명은 무장을 해제당한 채 시위대열 앞에 서서 만세를 외쳐야 했다. 장날의 외침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총성이 울렸다. 안동 주둔 일본군 수비대가 도착해 군중을 해산시켰고, 뒤이어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김화영 선생도 끝내 체포되었다. 그해 7월 12일, 고등법원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감옥의 시간은 길었지만, 예안의 만세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장터에서 시작된 외침은 마을을 넘어 시대의 증언이 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1983년 대통령표창). 이름은 교과서의 빈칸에 남았을지라도, 그날의 함성은 지역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울린다. 장날의 평범한 풍경을 역사로 바꾼 사람들, 그 가운데 김화영 선생이 있었다.
작가의 글
기록은 종종 숫자와 판결로 남지만, 역사는 사람의 결단으로 움직인다. 장터의 소음 속에서 선택된 한 걸음이 얼마나 먼 시간을 흔드는지, 이 이야기는 조용히 증명한다. 오늘의 일상 속에서도 그 결단의 무게를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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