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9. 18:47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나석주 선생
격전의 한복판에서 민족혼에 다시 불을 지핀 사람
1892년 겨울, 격랑의 시대 한가운데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나석주.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의 숨결 속에서 자랐다. 신민회 서북지방 책임자였던 김구가 세운 양산학교에서 한문을 배우며, 글자 너머의 뜻—나라를 잃은 백성의 분노와 회복의 의지—를 몸으로 익혔다. 소년의 하루는 배움이었고, 그 배움의 끝은 실천이었다.
젊은 나석주는 뜻을 함께한 또래들과 군자금을 마련하기로 결심한다. 황해도의 부호 최병항의 집을 찾은 밤, 그들은 복면을 썼지만 마음은 숨기지 않았다. “일반 강도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한 군자금을 구하러 왔습니다.” 말은 곧 신뢰가 되었고, 거액의 자금이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떠나며 남긴 당부는 더 깊었다. “곧 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선생이 위험해집니다.” 이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았고, 그 미제는 시대의 양심으로 기록되었다.
군자금은 상해 임시정부로 향했다. 어린 시절의 은사 김구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나석주는 행동하는 결의를 택했다. 한인애국단과 의열의 노선에서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식민 수탈의 심장부—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를 겨냥하라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그날, 잠자던 민족혼이 다시 타오를 것이다.”
1926년 12월, ‘마중덕’이라는 이름의 중국인으로 위장해 인천에 상륙했다. 고향으로 향하고 싶었으나, 삼엄한 경계 소식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부모와 아내,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되돌린 그 열차의 밤은 길고 차가웠다. 이별은 말을 남기지 못했기에 더 깊었다.
12월 28일 아침, 동춘여관을 나서며 그는 거리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았다. 식산은행에 들어가 던진 첫 폭탄은 불발이었다. 절망의 틈은 짧았다. 그는 태연히 빠져나와 동양척식회사로 달렸다. 1층에서, 2층에서, 도망치는 자들 앞에서 그는 멈추지 않았다. 폭탄은 다시 불발되었고, 운명은 또 한 번 잔혹했다.
포위망이 좁혀오던 을지로의 겨울, 그는 마지막 말을 세상에 던졌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이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그리고 스스로를 던져 역사를 깨웠다. 총성은 멎었으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작가의 글
한 사람의 결의가 도시의 심장을 두드릴 때, 역사는 방향을 바꾼다. 실패로 보인 불발의 순간들마저도, 끝내 꺼지지 않는 불을 남겼다. 그 불은 오늘의 자유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조용히 묻는다.
독립혁명을 폄하하는자 감히 그 입에 자유를 올리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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