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2. 00:49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그의 이름은 조명하.
1905년, 나라가 기울어가던 해에 태어나, 결국 무너진 조국의 폐허 속에서 청년이 되었다.
조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밥보다 굴욕이 더 쓰디썼고, 숨보다 부끄러움이 더 무거웠다.
그에게 독립이란 멀고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이었다.
그는 조직의 일원이 아니었다.
비밀자금도, 후원자도, 그를 보호해줄 이름도 없었다.
그의 곁에는 오직 조국의 이름을 잃은 한 사람의 분노와 결의만 있었다.
그 결의는 조용히 자라났다.
어린 시절의 굴욕과 망국의 기억이, 무너진 고향의 풍경이, 조용히 그의 가슴 속에서 날마다 불씨를 키웠다.
1928년, 그는 대만으로 향했다.
그곳은 일본의 군사 거점이었고, 제국의 권력 상징이 서 있는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여정을 알고 있었다.
목숨이 남아 있는 동안 오직 한 일만 하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그가 품은 것은 한 자루의 칼, 그 끝에는 20여 년의 분노와 조국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날, 타이중 거리.
한 일본 군인이 행렬 속을 지나간다.
그는 단검을 꺼내어 눈앞의 제국을 향해 내리쳤다.
칼끝이 번쩍이고, 그의 피가 튀었다.
누구도 믿지 못했던 일이, 한 인간의 손끝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제국의 심장은 잠시 멈췄고, 조명하는 이미 죽음을 넘어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의거는 곧바로 실패로 기록되었지만, 그것은 단지 제국의 기록일 뿐이다.
역사는 그의 칼이 멈춘 자리를 *‘자유가 다시 시작된 자리’*로 새겼다.
그가 처형되던 날, 1928년 10월 10일.
조명하는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삼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하리라.”
그의 말은 유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3개월, 일본 육군대장은 극약에 쓰러졌고,
그가 던진 칼은 여전히 공중을 가르고 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의지로 제국의 심장을 흔들어놓은, 조선의 칼날이었다.
작가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눈으로 그를 떠올리면,
조명하는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점의 빛이었다.
어떤 초상도 그의 얼굴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닌 ‘확신’이 있었고,
그의 손에는 칼이 아닌 ‘신념’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칼은 피를 가른 것이 아니라,
어둠을 가른 빛이었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조선의 새벽을 여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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