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혜 “조산사에서 혁명가로, 신념으로 피어난 이름”

2025. 10. 12. 07:02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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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혜 “조산사에서 혁명가로, 신념으로 피어난 이름”

1895년, 고양에서 태어난 한 궁녀가 있었다.
궁이 무너지고 나라가 사라졌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왕의 여인이 아니라 ‘민족의 딸’이 되었다.

박자혜.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던 그녀는
3·1운동의 참상을 눈앞에서 본 순간, 결심한다.
“이 손으로 생명을 살리듯,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1919년, 병원 옥상에 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하고 만세운동에 나선다.
환자를 돌보던 손이 태극기를 들고,
약솜 대신 독립선언서를 나르던 시대였다.

체포와 고문, 그리고 망명.
그녀는 북경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하며
여성축구팀의 주장을 맡았고, 그곳에서 단재 신채호를 만났다.
서로의 신념으로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조국의 독립이라는 같은 별을 향해 걸었다.

귀국 후, 그녀는 ‘산파 박자혜’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나석주 의사의 폭탄 의거를 돕고,
수많은 독립지사들에게 은밀히 연락망을 이어주었다.
그의 집은 늘 가난했지만,
그 가난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망을 품었다.

남편 신채호의 옥바라지를 7년간 이어가던 그녀는
굶주림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박자혜는 “이제 모든 희망이 끊어졌다”는 말만 남기고
광복을 10개월 앞둔 1944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손은 생명을 낳았고,
그녀의 삶은 조국을 낳았다.”


그녀의 이름 앞에 오래 머문다.
박자혜 — 누군가는 그녀를 단재 신채호의 부인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녀를 시대의 숨결로 기억하고 싶다.

지워진 이름, 가려진 얼굴,
그럼에도 꺾이지 않은 그 빛의 결.

렌즈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면
눈부신 흰색이 아니라,
수없이 덧대어진 붉은 심장의 온기가 느껴진다.

“생명을 살리던 손으로 조국을 품었던 여인,
그 손길은 지금도 역사의 맥박 위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