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0. 11:52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조만식 선생 (1883.2.1 ~ 1950.10.18)
- 민족의 스승, 그 양심의 불빛으로 -
함경도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선생의 눈빛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의 길은 총 대신 ‘정신’을 들고 싸운 투쟁이었다.
나라의 자주와 민족의 존엄이 짓밟히던 시대, 그는 교단에서 민족혼을 가르쳤다.
오산학교의 교사로, 학생들에게 ‘조선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심었다.
1919년, 독립만세의 함성이 온 나라를 흔들던 그날에도
조만식은 거리의 군중 속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불을 지폈다.
그의 만세운동은 교단에서, 마을에서, 공장과 장터에서 번져나갔다.
“우리가 스스로 살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살려주지 않는다.”
그의 말은 구호가 아니라, 삶의 선언이었다.
그는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했다.
그 운동은 단순히 물건을 사자는 외침이 아니라,
빼앗긴 자존을 되찾는 ‘경제 독립운동’이었다.
일제의 자본이 장악한 시장 속에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만든 옷을 입고, 조선의 쌀을 먹고, 조선의 정신으로 살아가라 말하던 그 모습은
마치 한 송이 불꽃처럼 꺼지지 않는 신념이었다.
1927년, 좌우의 이념이 갈라져 서로를 적으로 보던 시기,
조만식은 오히려 ‘하나의 조선’을 꿈꿨다.
그는 신간회 결성의 중심에 서서
사상보다 ‘조국’을 먼저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넓은 품은 좌우를 넘어, 분열된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광복 후, 나라의 해방을 누구보다 기뻐했지만
그는 곧 분단과 외세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싸워야 했다.
그의 싸움은 이번에도 총 대신 ‘양심’으로 이루어졌다.
탁치(託治)를 반대하며 “조선은 조선 사람의 손으로”라 외쳤던 그는
끝내 통일되지 못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억압받고, 고립된 채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삶은 거대한 깃발 하나 없이도
오히려 더 순결한, 민족의 신앙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조선의 간디”라 불렀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이름은 **‘조선의 양심’**이었다.
-
작가의 글
조만식 선생의 초상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숨을 고르게 된다.
그의 투쟁에는 함성보다 조용한 울림이 있다.
그는 싸우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일깨운 사람이었다.
사진가의 렌즈로 바라본 그의 얼굴은,
빛이 아니라 ‘신념’으로 조명되어 있었다.
나는 이 기록의 끝에서 그 시대의 메아리를 다시 듣는다.
“너희는 조선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 목소리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들려온다.
- 사진작가 김정안, 「빛으로 부활한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 (~1939.10.18) (0) | 2025.10.20 |
|---|---|
| 독립운동가 이광민 선생 (1895~1945.10.18) (0) | 2025.10.20 |
| 독립운동가 고광순 선생 (1848.2.7 ~ 1907.10.16) (0) | 2025.10.20 |
| 이강년(李康秊, 1858–1908) (0) | 2025.10.14 |
| 박자혜 “조산사에서 혁명가로, 신념으로 피어난 이름” (0) | 202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