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1868.8.27 ~ 1943.10.25)

2025. 10. 27. 09:54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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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1868.8.27 ~ 1943.10.25)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아홉 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난 속에서 단련된 그의 의지는
훗날 나라를 되찾는 거친 투쟁의 불씨가 되었다. 머슴살이로 청년기를 보낸 그는
백성의 피눈물을 보며 불의에 분노했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의 참상을 지켜보며
칼을 쥐었다. 그의 손은 곧 의병의 깃발을 들게 된다.

강원과 함경, 황해의 산맥을 넘나들며 일제 군경을 응징한 젊은 의병장은
결국 수많은 전우를 잃고 홀로 싸움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1907년 일제가 총포취체법을 시행해
백성들의 총을 빼앗자, 그는 사냥꾼과 농민, 해산군인들을 모아 다시 일어섰다.
그는 외쳤다.

“우리가 쏜 총은 짐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나라를 위한 총이 되어야 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홍범도는 대한독립군을 조직하고 간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마침내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일제의 추격군을 맞아
봉오동 골짜기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이끌어낸다.
그 전투는 단순한 무력의 승리가 아니라,
“망국의 백성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선언이었다.

봉오동의 함성은 곧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졌다.
김좌진과 함께 이끈 그 전투에서 일본군은 1,200여 명이 전사했고,
독립군의 깃발은 백두산 자락에 휘날렸다.
하지만 이듬해, 자유시사변의 비극 속에서 독립군의 힘은 뿔뿔이 흩어졌고
장군 또한 먼 러시아 땅으로 향하게 된다.

연해주에서, 그리고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까지 떠밀린 그곳에서도 장군은 늘 “조국의 하늘”을 그리워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길은 외롭고 쓸쓸했으나,
그의 이름은 어느 민족의 역사보다 뜨겁게 빛난다.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의 낯선 들판에서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봉오동의 함성은 여전히 들린다.
“독립은 죽어서도 멈출 수 없다.”

-

작가의 글

사진의 빛은 사라진 과거를 되살리고,
망각된 이름을 다시 세상에 불러낸다.
홍범도 장군의 눈빛 속엔 아직도 그날의 먼지가, 그날의 숨결이 남아 있다.

나는 이 사진을 복원하며 문득 생각했다.
그가 들었던 총은 단지 무기가 아니라,
지워진 이름들을 되찾기 위한 한 줄기 “빛의 총성”이었음을.

그 빛을 다시 세상으로 꺼내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의 이유다.

- 사진작가 김정안, 「빛으로 부활한 독립운동가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