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9. 22:45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 (1868.9.12 ~ 1942.10.29)
교육으로 민족의 미래를 세운 사람
“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힘이다.
그 힘은 학문에서, 깨달음에서 나온다.”
김약연 선생이 조국을 떠나 두만강을 건넜던 1899년의 길은,
망명의 길이 아니라 희망의 길이었다.
그는 만주 북간도의 황량한 벌판에 새 터전을 일구며,
나라 잃은 백성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그곳에서 세운 ‘명동촌’은 단순한 이주민 마을이 아니라
교육과 자치를 통해 조선 민족의 혼을 다시 일으키는 자치공화의 모형이었다.
1901년, 그는 ‘규암재’라는 서당을 세웠고
곧이어 ‘명동학교’를 설립했다.
명동학교는 근대적 교육과 애국사상을 함께 가르친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늘 말했다.
“배운다는 것은 남의 나라 글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우는 일이다.”
학생들의 글에 ‘나라’, ‘독립’, ‘정신’이 빠지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일화는
그의 교육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의지의 훈련이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김약연은 ‘간민회’를 조직하여
북간도 일대 한인사회의 자치와 생존을 주도했다.
일제의 간섭이 깊어질수록 그는 더욱 조직적이고 냉철하게
한인사회의 질서를 세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
1919년 무오독립선언과 3·13 만세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종교와 사상을 초월한 연대,
즉 ‘교육과 신앙, 경제, 민족의 통합’을 이루려는 그의 시도는
후일 민족운동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한 번도 조국을 잊지 않았다.
그의 삶의 궤적은 ‘떠남’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돌아감이었다.
1942년, “내 모든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다.”
그 한마디에 그의 신념과 평생의 길이 모두 담겨 있다.
그가 세운 명동학교의 제자들 —
홍범도, 김좌진, 윤동주 —
그들은 스승의 교단을 이어 총과 펜으로
조국의 이름을 다시 불러냈다.
- 작가의 글
만주의 바람은 언제나 거칠고 쓸쓸하다.
그러나 그 바람 사이로 김약연 선생의 교실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남긴 사진 한 장,
그 속의 단정한 눈빛은 교단 위의 선생이자,
동시에 시대의 장군이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그의 손끝을 본다 -
칠판 위의 분필 자국처럼 희미하지만,
그 선이 이어진 자리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의 교실은 전선이었고,
그의 분필은 총보다 더 강한 무기였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교육의 불씨는
지금도 우리 말과 글 속에서 살아 숨 쉰다.
그분의 삶을 복원하는 이 일,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이라 믿는다.
사진작가 김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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