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3. 11:17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 (1859.9.30 ~ 1925.11.1)
“한국사는 나라의 혼이다” -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조선의 하늘이 짙은 먹구름에 덮였던 시대, 한 사람의 학자는 붓을 들었다.
그의 이름은 박은식(朴殷植). 그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이자, 독립의 새벽을 부른 정신의 지도자였다.
선생은 언제나 ‘혼(魂)’을 말했다.
“국교(國敎)·국학(國學)·국어(國語)·국문(國文)·국사(國史)는 국혼(國魂)에 속한다.
국혼이 살아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그가 1915년 《한국통사》의 마지막 장에 남긴 이 구절은,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 살아있는 등불이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펜으로 싸웠다.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황성신문 주필로서 민중을 깨우는 논설을 써내려갔다.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다.”
그의 글은 날카로웠고, 일제의 검열은 더욱 거세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세상을 울렸고,
황성신문은 일제에 의해 강제 정간되었다.
복간된 이후에는 박은식 혼자서 모든 논설을 책임지며
마지막까지 ‘민족의 눈’을 지켜냈다.
결국 1910년, 일제는 황성신문마저 폐간시켰고
박은식의 글은 금서(禁書)로 묶여 불에 타버렸다.
그는 통탄했다.
“국체(國體)는 망했으되, 국혼이 남아 있으면 부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혼마저 불태우는구나…”
그 탄식은 결심으로 바뀌었다.
1911년, 그는 붓과 원고를 들고 만주로 향했다.
조국의 흙을 떠나지만, 조국의 혼은 그 안에 살아 있었다.
서간도의 흥도천, 윤세복의 집 한켠에서
그는 새벽마다 등불을 켜고 글을 썼다.
종이 위에는 “망국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혼이 살아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새겨졌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 바로 《한국통사》, 그리고 **《한국독립운동지혈사》**였다.
피와 눈물로 쓴 그 두 권의 책은
“민족의 역사야말로 나라의 혼”임을 일깨웠다.
만주와 상하이를 오가며,
그는 동제사를 조직하고 총재로서 이끌었다.
이어 신한혁명당,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결성해
사이토 총독 암살 계획까지 세웠다.
“백 번 꺾여도 다시 일어나면,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그는 그렇게 민족의 의지를 일깨우는 ‘혼의 장군’이었다.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문을 다시 열며 그는 대통령직을 맡았다.
그러나 독립운동 세력은 분열되어 있었고,
그는 평생의 신념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 “민족의 통일이 먼저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25년 상하이에서 병으로 눈을 감았다.
향년 예순여섯.
그의 장례는 임시정부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영결식 날, 동지들은 박은식의 영정을 앞에 두고 울었다.
그들이 본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국혼’ 그 자체였다.
-
작가의 글
사진작가로서 그의 초상을 바라보면, 언제나 눈빛에 불이 있었다.
그것은 분노의 불이 아니라, 지켜야 할 혼의 불빛이었다.
박은식 선생의 삶은 칼이 아니라 붓으로, 총이 아니라 기록으로 나라를 지킨 이야기다.
그는 글로 싸웠고, 그 글은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은,
그의 불씨가 우리 가슴 속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혼은 죽지 않는다.”
그 말은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우리를 깨운다.
- 사진작가 김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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