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6. 09:48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채응언 선생 (~ 1915.11.4)
국권이 강탈된 뒤 역사상 가장 긴 의병 활동을 펼친 청춘
흙먼지를 뒤엉킨 들판에서부터 겨울 산악지대의 적막까지,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헐벗은 옷 · 조악한 밥을 달게 여기고, 부하와 침식을 함께하며, 재물은 털끝도 범한 바 없다.”
채응언 선생은 그 목소리를 삶으로 담은 사람이었다. 1907년경부터 1915년까지 약 8년간, 한반도 중북부 일대에서 집요하고 치열하게 항일 의병활동을 이어간 그는, 일제 말기 의병운동의 마지막 전선으로 기록된다.
출생과 유년의 기록은 흐릿하다. 다만 평안남도 성천군 능중면 고익리라는 주소가 체포 판결문에 나타나고 있어, 그곳이 출생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 농부였던 그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호미를 내려놓고 돌과 총을 들었다.
1908년 황해도 안평 순사주재소 습격을 시작으로, 함경남도 안변·강원도 이천·평안남도 성천 등지를 오가며 일본군 헌병소와 통신시설을 끊어내는 유격전을 펼쳤다.
그 부대의 규모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까지 있었으며, 때로는 500명 가량의 연합부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선생은 부하들에게 늘 말했다:
“우리의 싸움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조국이 사라졌어도, 이름 없이 스러지더라도, 민중의 동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그런 그의 말처럼, 그의 부대는 약탈 대신 민생 보호를, 무기획득 대신 조직적 연대를 택했다. 이는 일제 헌병대마저 “채응언 부대를 수색해도 성과가 없다”고 고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권력은 끝내 그를 잡았다. 1915년 7월 5일, 군자금 모금 장소에서 친일 세력의 밀고로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그는 평양형무소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았고, 11월 4일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그가 잡힌 그 날로, 대한제국기 말기의 의병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
작가의 글
이 사진 속 얼굴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그 결기는 깃발 없이 싸운 사람의 얼굴이다.
돌멩이와 호미 사이에서 총을 맞들고,
산골짜기에 붉은 피를 묻히며
그는 ‘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살게 할 싸움’에 나섰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마침내 잡히고, 끝내 쓰러질지라도
동포 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이 있다.
사진 위에 담긴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눈부신 독립의 씨앗이 놓여 있다.
그가 남긴 길은 오직 흙밭 위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 위에 남은 자취가
오늘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역사로,
다시 되살아난다.
사진작가 김정안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지막 광복군, 이윤철 지사 (1) | 2025.11.06 |
|---|---|
| 독립운동가 남상목 선생 (1876.4.12 ~ 1908.11.4) (0) | 2025.11.06 |
| 정태진(丁泰鎭, 1903.7.25 ~ 1952.11.2) (0) | 2025.11.03 |
|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 (1859.9.30 ~ 1925.11.1) (0) | 2025.11.03 |
| 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 (1868.9.12 ~ 1942.10.29) (0) | 2025.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