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0. 12:34ㆍ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이윤재 선생(1888.12.24~1943.12.8)
말과 얼을 지키다 옥중에서 스러진 겨레의 스승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순국한 국어학자이자 역사학자
바람은 늘 스스로의 길을 찾고, 말은 늘 그 겨레의 뿌리를 가리킨다고 했다.
이윤재 선생은 바로 그 “말의 뿌리”를 지키는 길에 한평생을 바친 숨은 투사였다.
칼 대신 한글, 총 대신 우리 역사, 피 흘리는 전쟁 대신 민족의 얼을 깨우는 공부와 가르침으로 싸운 분이었다.
- 나라 잃은 슬픔 속에서 ‘말’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며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외세 앞에서 기울어지는 조선의 모습에서 한 가지 뼈아픈 사실을 깨달았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겨레의 슬기와 배움이 모자라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그는 **‘민족을 살리는 힘은 교육뿐’**이라는 생각 아래
김해에서 교편을 잡으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민족의 불씨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한 학교 교육에 머물지 않았다.
말과 글, 뿌리와 얼을 돌보지 못하면 나라가 다시 세워진다 해도 설 곳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곧장 주시경 선생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우리말 연구의 맥을 잇는 가장 중요한 길 위에 서게 된다.
- “말은 겨레의 살결이다”
조선어학회로 이어지는 큰 흐름**
대구에서의 공부, 주시경 문하에서의 5년은
선생의 가슴 속에 아주 굳센 ‘자국(痕)’을 남겼다.
• 우리말은 겨레의 살결
• 역사는 겨레의 숨결
• 말과 얼을 잃으면 겨레도 사라진다
이 신념은 이후 그의 온 생애를 이끄는 씨앗이 되었다.
마산 창신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칠 때,
일제가 역사 교육을 금했음에도 선생은 몰래 우리의 역사를 전하며
학생들에게 **“너희는 누구의 피를 잇고 태어난 이들인가”**를 일깨웠다.
그 불씨는 3·1운동이 터진 뒤 더 크고 뜨거운 불길이 되었다.
영변에서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버텼고,
출옥 후 중국으로 건너가 신채호 선생을 만나 사학을 본격적으로 깊게 익히게 된다.
이 만남은 선생에게 새로운 깨침을 주었다.
“겨레의 주인은 겨레 스스로다.
민중이 살아 움직여야 역사가 바뀐다.”
북경대 사학과에서 3년을 배우고 돌아온 선생은
이미 단단한 민족사관을 품은 학자가 되어 있었다.
- ‘우리말 사전’: 나라의 기둥을 세우는 일
1927년, 선생은 조용히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찌 우리말 사전 하나 없이 나라를 다시 세우려 하는가.”
이 글귀는 후에 조선어학회의 심장 같은 목표가 된다.
그는 동광에 「쾌걸 안용복」을 발표하며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한 사내의 기개를 통해
청년들에게 ‘나라를 지킨다는 것’의 참뜻을 일러주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가 꾸려지자 그는 핵심이 되었고,
1933년 우리 겨레에 처음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민족의 ‘뿌리줄기’를 정리한 하늘 같은 작업이었다.
- 조선어학회사건 : 말의 숨을 끊으려 했던 일제,
그리고 그 매운 고문을 버텨내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말(어문)을 지키는 독립운동단체”라 규정했다.
그만큼 이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사전 원고부터 연구 자료 수십만 장까지 몽땅 압수하고
학회 회원 전원을 연행해 짐승보다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특히 이윤재 선생에게 가한 고문은 가장 모질었다.
3·1운동 경력, 민족주의 사학자, 사전 편찬의 중심…
일제가 두려워한 모든 요소를 지닌 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3년 겨울.
눈발이 시릴 만큼 한기가 서린 서대문형무소 차가운 돌방에서
55세의 나이로 숨이 멎었다.
광복을 불과 2년 앞두고.
그 짧고 고된 생애는
마지막까지 말을 지키려는 겨레의 몸짓 그 자체였다.
- 작가의 글
말은 겨레의 숨빛이고, 글은 겨레의 결이다.
그 빛을 지키기 위해 삶을 갈아바쳤던 한 사람의 걸음이
이렇게 눈앞에 놓이면 마음이 조용히 흔들린다.
이윤재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나이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 생각이 오래 남아 가슴을 누른다.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도 말 하나, 글 한 줄의 힘을 믿고 버텨낸 그 기개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바람처럼 스며들었으면 한다.
그분이 지키려던 말의 숨결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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