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손치형 선생(孫致亨, 1920.12.20 ~ 1998.12.11)

2025. 12. 15. 01:16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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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손치형 선생(孫致亨, 1920.12.20 ~ 1998.12.11)

광복군 제3지대에 몸을 실은 청년, 해방을 향한 침묵의 전선

손치형 선생은 1920년 12월 20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압록강을 마주한 의주는 일찍부터 국경의 긴장과 시대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선생은 나라를 잃은 현실을 일상처럼 마주하며 성장했다.

청년이 되었을 무렵, 조국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선생은 침묵 속에 살기보다는 행동으로 시대에 응답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광복군 제3지대는 주로 중국 내 후방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연합군과의 협력, 정보 수집, 군사 훈련, 향후 국내 진공을 대비한 준비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였다.
화려한 전투보다 긴 기다림과 훈련, 보이지 않는 헌신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손치형 선생 역시 총성과 영웅담보다는,
군복을 입고 하루하루를 견디며 독립의 때를 준비한 수많은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식량은 늘 부족했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으며,
해방을 맞이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언제나 곁에 있었다.

그러나 선생과 동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이 지켜낸 것은 단지 전선이 아니라,
해방 이후를 살아갈 조국의 시간과 가능성이었다.

1945년 8월, 마침내 광복이 찾아왔다.
총을 들고 조국 땅을 밟지 못한 광복군도 있었고,
환호 대신 조용한 안도를 품은 이들도 많았다.
손치형 선생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분이었다.

광복 이후 선생은 독립운동의 공을 내세우기보다,
조용히 삶의 자리로 돌아가 시대를 견디며 살아갔다.
그 침묵 속의 공로는 뒤늦게나마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1998년 12월 11일, 긴 생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돌아갔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옥이 여사와 1남 2녀가 남아 있다.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복은 분명 이런 이들의 어깨 위에서 가능했다.

- 작가의 글

광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적이 아니었다.
기록에 크게 남지 않은 수많은 청년들의 기다림과 결심,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 위에 놓인 결과였다.

손치형 선생의 삶은
‘전투가 없으면 헌신도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좁은지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시간을 버텨낸 이들 또한
분명 독립의 주역이었다.

이 기록이,
역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못한 자리에도
이름과 얼굴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작은 증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