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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397)

  • 독립운동가 채기중 선생(1873.7.7~1921.7.9)

    독립운동가 채기중 선생(1873.7.7~1921.7.9)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부호를 처단하며 일제에 맞섬. 옛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의로운 사람들과 사귀어 왔네. 죽겠노라 맹세가 하늘과 해를 뚫나니 오만 가지 형벌인들 몸을 사리랴 -선생이 옥중에서 남긴 시- 독립운동가 채기중 선생은 어려서부터 일본군에의해 곤욕을 치루게 되었는데 선생이 살던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었기 떄문이죠. 어려서부터 남의 억울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할만큼 의협심이 강했다고 합니다. 근대식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높은 수준의 한문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무려 76개의 한시를 지을 만큼 한문의 경지가 높았습니다. 선생은 경상도 영주지역으로 이주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

    2024.07.09
  • 밀양학도, 의열단원이 되다. 최수봉선생

    일제강점시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곳으로 악명높았던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이있다. 바로 최수봉 선생이다. 밀양의 학도, 의열단원이 되다. 선생은 1894년 경남 밀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향리 개량서당에서 지식을 배웠다. 최수봉 선생은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둘은 친구였다. 당시 일본인 교사가 우리의 역사를 말하며 단군이 일본 대화족 시조의 아우라고 말하자 거세게 항의했고 그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1910년 밀양에서 사립학교인 동화학교에 편입해 독립운동가 김대지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항일의식이 점점 고취되었다. 1913년 기독교 계통 평양 숭실학교를 다니던 선생은 학업을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길에 뛰어들었다. 1919년 고향..

    2024.07.08
  • 독립운동가 박금동 선생 1925.12.16. – 2019.07.08.

    독립운동가 박금동 선생 1925.12.16. – 2019.07.08. 이명: 박한식(朴韓植) 본적: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제징용 학도병, 탈출후 광복군 입대 OSS 냅코 프로젝트 참여한 애국지사 후손의 제보를 통해 박금동 (이명 박한식) 애국지사를 세상에 알립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수있어 감사합니다. 시대의 과제속에서 보여주었던 그날의 용기들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오래도록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박금동 선생은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에 배속되었다. 강제 징집되어 군속(군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탈출한 선생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했다. 1942년 11월 3일이었다. 광복군 제2지대(支隊) 대장 이범석 휘하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광복군의 국내..

    2024.07.08
  • 독립운동가 정인승 선생(1897.5.19~1986.7.7)

    독립운동가 정인승 선생(1897.5.19~1986.7.7)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며 한글 연구에 힘쓰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 문화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한글 연구를 택하고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선생은 이후 연희전문학교에서 위당 정인보선생에게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인 한글 연구에 힘을 쏟았다. 졸업 후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며 지의 발행을 주관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등 우리 말 체계화를 위한 핵심적인 연구들에 참여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우리 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완수하고 평생을 한글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2024.07.07
  • 독립운동가 신팔균 선생(1882.5.19~1924.7.2)

    독립운동가 신팔균 선생(1882.5.19~1924.7.2) " 압록강 이남으로 밀고 내려가 일본 경찰대를 섬멸하라! "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대한통의부 의용군 사령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국권이 빼앗겼던 1900년대 초 우리나라는 국권회복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일화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과 집안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을 하다 순직을 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신팔균 장군은 우리에게 친숙한 김좌진, 홍범도, 김동삼 장군들과 함께 중국 만주를 무대로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던 아주 대표적인 무장투쟁가입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유비-관우-장비가 맺은 도원의 결의를 들어본 ..

    2024.07.02
  • 독립운동가 김철(金澈) 출생 1886년 10월 15일

    독립운동가 김철(金澈) 출생 1886년 10월 15일 본적 조선 전라도 함평현 신광면 사망 1934년 6월 29일 (47세) 별칭 호 일강(一江), 다른 이름 김중청(金重淸)·김영택(金永澤),김영탁(金永澤) (앞줄 가운데 안창호 선생, 뒷줄 맨 왼쪽이 김철 선생) 함평 출신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의 생애 신광면 ‘천석꾼’ 지주 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 헌신 재산 정리 상해行… 3·1 운동 손병희와 중추적 역할 임시정부 수립 큰 기여… 김구·안창호 등과 독립운동 ‘윤봉길 의거’·군무장 맡아 동분서주 과로로 순국 생애 초기 1886년 10월 15일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부친 김동진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서 4남 1녀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그는 신학문을 배워야 극일..

    2024.06.30
  •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1879.9.29~1944.6.29)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1879.9.29~1944.6.29) 민족대표 33인, 불교계 대표, 3.1 독립선언 이끌어 님은 갔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님의 침묵, 1926. 만해 한용운

    2024.06.30
  • 독립운동가 백초월 선생(1878.2.17~ 1944.6.29)

    독립운동가 백초월 선생(1878.2.17~ 1944.6.29) 독립 자금 모금에 앞장선 큰스님 출소한 백초월은 또 다시 만주로 보내는 독립운동 자금에 연루되어 일제에 체포되었다. 초월은 그 후 청주교도소에 구금 중이던 1944년 6월 29일에 옥중 순국하였다. 순국 연유는 전하지 않지만, 일제의 가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보인다. 초월은 1920년에도 고문을 당하였기에 20년 간의 체포, 구금, 고문, 감시를 당하였다. 그의 시신은 행방불명되었고, 독립정신의 복권은 1986년에 가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91년에는 고향에 순국비가 서기도 하였다. 초월의 맹렬한 독립운동은 2009년 5월, 그가 머물던 진관사에서 태극기를 비롯한 진귀한 독립운동 자료가 대거 발견됨으로써 재확인되었다. 백초월의 독립운동에 ..

    2024.06.30
  • 독립운동가 민종식 선생(1861.3~1917.6.26)

    독립운동가 민종식 선생(1861.3~1917.6.26) 의병장이 된 이조참판 "일본인 토벌하고, 5적 섬멸하고자 의병 일으켜" 판서의 아들로 참판까지 지냈으나, 을미사변 이후 관직을 떠나 항일 운동에 나섰다. 그후 선생은 가산을 팔아 군자금 2천원을 마련한 후 홍주의 의병장이 되어 무장투쟁을준비했다. 선생은 서천읍을 공격 점령하고 남포군을 제압, 마침내 홍주성을 장악했다. 일본군들은 야밤에 홍주 성내에 돌입하여 민간인들을 수백 명 닥치는 대로 살육했다. 이때 학살된 민간인은 약 300명에 이른다. 훗날 일본에 잡혀 일본 경찰 취조에도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교수형을 받았으나 융희황제 즉위이후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에도 항일운동을 계획하였으나 1917년 56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2024.06.26
  • 독립운동가 나창헌 선생(1896.1.29~1936.6.26)

    독립운동가 나창헌 선생(1896.1.29~1936.6.26) '독립투쟁은 총과 검과 혈로써, 최후의 일각, 최후의 한 사람까지' 독립운동가가 된 의학도. 우리 독립은 우리의 사활문제임은 췌언(贅言)을 기다릴 것이 없을 것이며, 우리들의 독립은 총과 검과 혈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고로 우리들은 금후 한 사람이 될 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철과 혈로써 저 간악하고도 악독한 왜구(倭仇)를 배제할 것이다. - 나창헌 선생이 조직한 중에서(1920. 6)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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