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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397)

  • 독립운동가 백정기 선생(1896.1.19~1934.6.5)

    독립운동가 백정기 선생(1896.1.19~1934.6.5) 친일 모리배 처단을 위해 총을 잡은 아나키스트 “나의 구국 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日帝)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평화 위에 세계 일가(一家)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백정기 의사, 1933년 3월 17일 중국 침략의 주범 중 하나인 주중 일본공사 처형에 나서기 전 - 상해 육삼정(六三亭)에서 침략 주구인 주중 일본공사 등을 처단하기로 결정후 폭탄 2발, 권총 2자루, 탄환 20발, 수류탄 1개로 만반의 처형 준비를 갖춰갔다. 하지만.. 믿었던 일본인의 기밀누설로 처형 실행 직전에 체포되었고 일본 장기(長崎.나가사키)로 압송된 후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로 시달..

    2024.06.05
  • 독립운동가 윤세주 선생(1901.6.24~1942.6.3)

    독립운동가 윤세주 선생(1901.6.24~1942.6.3) 의열단 창설멤버, 일본군 40만과 최후 결전! 윤세주 선생은 의열단의 강령 및 목표에 따라 조선총독부 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 투척자를 물색하게 됩니다 정의롭고 열정적이었던 당시 19세의 선생은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계획을 진행하던 중 정보가 누설되어 국내 동지 50여 명과 함께 처음으로 체포됩니다. 선생은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5년 4개월의 감옥생활을 버티어냈고 1927년 출옥한 후 신문사 기자 주식회사 사장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독립운동과는 더이상 관련없는 사람인 것처럼 조용히 지내다 19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이동합니다. 이 시기 선생은 치밀하게 독립운동에 대한 전략을 수..

    2024.06.03
  • 독립운동가 백일규 선생(1880.3.11~1962.5.31)

    독립운동가 백일규 선생(1880.3.11~1962.5.31) 미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민족독립 위해 헌신. 백일규 선생은 우연한 계기로 하와이로 이주, 이후 도미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미국 내 독립운동활동에 뛰어들었다. 대동보국회와 대한인국민회를 거치며 중책을 역임하였고 조선혁명당 미주총지부에서 활동하며 국외에서의 독립운동 지원을 위해 노력하였다. 신문사 주필, 경제학 서적 출간 등 언론인과 학자로서의 활동을 병행하였으며, 광복후에는 재미교포들의 안위를 위해 헌신하였다.

    2024.05.31
  • 강혜원 1886.11.21 ~ 1982.5.31

    강혜원 1886.11.21 ~ 1982.5.31 강혜원 선생은 1905년 5월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당시 선생의 나이는 19살이었고 어머니와 남동생 강영승 등과 함께 노동 이민을 하였습니다. 하와이에 도착해서는 가파올라 농장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강혜원 선생은 하와이에 있는 마노아밸리 여학교를 다녔고 1913년 캘리포니아 주로 이동해 12월 9일 남편 김성권 선생과 혼인하였습니다. 몇 년 뒤, 1919년 고국에서 3.1만세운동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때 강혜원 선생은 대한인국민회를 후원하게 되는데 올케였던 강원신 선생과 함께 캘리포니아 다뉴브 지역에서 신한부인회를 조직하고 총무로 일을 하시게 됩니다. 그 후에도 선생은 분산되어있던 다뉴바신한부인회, LA부인친애회, 새크라..

    2024.05.31
  • 독립운동가 양진여 선생(1862.5.11~1910.5.30)

    독립운동가 양진여 선생(1862.5.11~1910.5.30) 일제의 광주수비대를 격파한 평민 의병장 무릇 왜적(倭賊)은 우리의 하늘에 사무치는 원수인 것이다... 오늘 행하지 못하면 내일 행할 것이요, 금년에 죽이지 못하면 내년에는 기필코 죽이기로 맹서하였다. -호남 의병장 격문 中 독립운동사를 살펴보다 보면 이력이 독특한 인물들이 있다. 부유한 집안이며 나라를 다스리던 양반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국의 안녕을 위해 뛰어든 사람들, 10대의 나이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그리고 한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람들. 이 중에서도 부자가 나란히 독립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같은 감옥에서 순국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양진여 선생과 양상기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양진여 의병장은 원래 학문을 공부해..

    2024.05.31
  • 독립운동가 양진여 선생(1862.5.11~1910.5.30)

    독립운동가 양진여 선생(1862.5.11~1910.5.30) 일제의 광주수비대를 격파한 평민 의병장 무릇 왜적(倭賊)은 우리의 하늘에 사무치는 원수인 것이다... 오늘 행하지 못하면 내일 행할 것이요, 금년에 죽이지 못하면 내년에는 기필코 죽이기로 맹서하였다. -호남 의병장 격문 中 독립운동사를 살펴보다 보면 이력이 독특한 인물들이 있다. 부유한 집안이며 나라를 다스리던 양반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국의 안녕을 위해 뛰어든 사람들, 10대의 나이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그리고 한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람들. 이 중에서도 부자가 나란히 독립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같은 감옥에서 순국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양진여 선생과 양상기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양진여 의병장은 원래 학문을 공부해..

    2024.05.30
  • 독립운동가 박차정 선생(~1944.5.27)

    독립운동가 박차정 선생(~1944.5.27) 민족해방과 여성운동을 통해 진정한 자유평등의 세상을 꿈꾸다. "일본제국주의가 타도된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혁명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방면에서 진정한 자유 평등의 혁명이 아니라면 우리 부녀는 철저한 해방을 얻지 못한다.” 박차정 선생은 민족의식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고 부산에있는 동래일신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일신여학교는 선교계 학교이면서도 민족정신의 함양을 중요시 하여 조선어, 역사, 지리 등의 교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많은 민족운동가를 배출해냈고 1919년 3.1운동 시에는 부산지역 만세운동 전개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전통을 갖고 있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가정에서 키워온 선생의 항일의식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이때..

    2024.05.30
  • 독립운동가 양한묵 선생(1862.4.29~1919.5.26)

    독립운동가 양한묵 선생(1862.4.29~1919.5.26) 천도교 지도자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옥중 순국 선생은 천도교 교리서를 펴내며 근대화와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셨고 3.1독립만세운동 후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2024.05.26
  • 독립운동가 임병찬 선생(1851.2.5~1916.5.23)

    독립운동가 임병찬 선생(1851.2.5~1916.5.23) 대한독립의군부 결성, 의병전쟁 주도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이에 매우 슬퍼하던 면암 최익현 선생이 호남지역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를 기회로 본 임병찬 선생은 최익현 선생을 만나 의병활동을 시작합니다. 최익현 선생과 임병찬 선생은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으며 실제로 최익현 선생이 병권을 위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병권을 위임 받은 선생은 전라북도 무성서원에서 의병부대를 만들었고 사방 고을에 의병 격문을 돌리며 군량미와 군기를 향상시켰고 약 1천명에 해당하는 부대원을 갖추게 됩니다. 실제로 의병활동을 하며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어냈던 선생은 의병 부대간에 노선과 이념이 달라 살상을 ..

    2024.05.23
  • 독립운동가 유근 선생(1861.9.26~1921.5.20)

    독립운동가 유근 선생(1861.9.26~1921.5.20) 민족계몽에 앞장서며 를 창간한 영원한 언론인 지방열(地方熱)을 없이하라. 이것은 조선인의 고질(痼疾)이니 사회를 위하여 활동하는 자, 민족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마땅히 이에 조심하여 그 근절(根絶)을 기(期)하라. -선생의 유언 중에서(1921.5)-

    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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